룩백 리뷰-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다.
만화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만화를 보며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만화는 나에게 애증의 존재다. 어린 시절,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나만의 설정과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이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꿈을 꿨다. 내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통해 남에게 감동을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것, 그리고 넘쳐나는 열정과 상상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모든 것을 동경했다. 그래서 만화를 사랑했고, 그 열정을 10대 시절의 낡은 파이롯 잉크와 손때 묻은 만년필에 담아냈다.
하지만 높이 오를수록 추락은 더 아프고, 멀어질수록 상처는 깊어진다. 나는 만화과에 들어갈 실력이 되지 않았다. 그림에 대한 특별한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는 잘 그렸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뛰어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실력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포기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타협점으로 애니메이터가 되었다. 그림을 움직이고, 자르고, 기울이며, 그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 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무엇보다 내가 진심으로 만화를 그려 대중에게 보여줬을 때,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난다면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 회피라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비겁하지 않다고 되뇌였다. 세상은 꿈을 이룬 자와 타협한 사람에게 박수를 치니까. 나는 후자를 택했다. 전자의 길이 얼마나 두려운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룩백은 상처 위에 뿌려진 소금과 같았다. 하얀 빛 속에 선명한 붉은 색채로 느껴지는 화끈거림, 간지러움, 쓰라림과 코끝의 찡함을 느끼게 했다. 룩백의 주인공 후지노와 쿄모토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으면서도, 나와 닮아 있었기에 질투와 이해가 동시에 밀려왔다.
그들은 나와 같은 ‘그림쟁이’였다. 이유는 바뀔 수 있어도 그림을 그리는 존재. 그림을 잠시 멀리해도, 작은 계기 하나로 다시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게 되는 존재였다. 그들의 유년기는 시골에서 자랐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그림쟁이’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남들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만화를 그려본 경험, 어린 시절의 재능에 우쭐해했던 순간, 자신보다 더 뛰어나 보이는 친구를 만났을 때 느낀 충격과 시기심, 그리고 그로 인해 잠시 그림에서 멀어졌던 경험들. 이 모든 것은 그림쟁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성공할수록 더욱 질투가 났다. 그들은 서로의 등을 맞대고, 보고 따르는 관계였으니까.
이야기의 중반부에 이르면, 그 하얀 결정 뒤에 숨겨진 선명한 붉은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떤 이유로 두 주인공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것도 감정적인 이유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서로에게 서운함이 남아있어도, 그 관계는 마치 성인이 되어 1년에 한 번 만나는 친구와 같은 상태가 된다. 연락은 끊기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눈길이 가게 되는 그런 관계가 된 것이다.
그림쟁이가 되면 누구나 겪게 되는 흔한 관계다. 그림쟁이는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 자신의 상상이 담긴 몇 미리의 종이는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후지노와 쿄모토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한쪽은 그림쟁이를 동경하며 그의 뒤를 따르고, 다른 한쪽은 그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깊이 있게 발전시킨다. 때로는 스승과 제자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자매와 형제로.
이 관계는 그림쟁이에게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다. 스승이 된 그림쟁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그를 가르칠 자격이 될까? 괜한 꿈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만약 그가 잘못된다면, 내 잘못이 아닌가? 이 업계는 쉬운 길이 아닌데, 그를 힘든 길로 이끈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들 말이다.
룩백은 이 그림쟁이의 아픈 손가락을 맹렬하게 조명한다. 그림쟁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본 고민을 계속해서 토해내게 한다. 그 정도가 심해져, “내 상상대로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마치 그림쟁이들에게 “그러니까 심지 말았어야지”라고 말하는 듯이. 그리고 그 찬란함 뒤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전혀 찬란하지 않은 무채색의 현실로. 겨울 밤처럼 어두운 남색과 회색으로 덮인 걱정과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 현실은 완전히 차갑지만은 않았다. 오래 전 그들이 함께 그린 노랗게 색바랜 만화만이 따뜻한 색으로 남아 있었다.
마치 이 옅은 세피아 빛의 색바랜 종이를 강조하기 위해 온 세상이 회색으로 덮인 것처럼. 그 따뜻한 작은 세피아 빛만이 남아 있는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것이 있기에, 그림쟁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며, 영화는 홀로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주인공의 등을 보여주면서 룩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무리된다.
PS. 갠적으로 쓰라린 만큼 그래도 내 옛 추억들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덕분에 잊고 있던 만화에 대한 사랑이 다시 생각나더라. 언제 한번 만화를 그려봐야겠다. 아주 재밌는 걸로...